예술이란 무엇인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작품들과는 너무나 다른 작품들에 대해 세미나를 했었다. 대학을 막 입학한 87년, 선배들은 후배들을 불러놓고 여러 가지 세미나를 시켰다. 지금이야 익숙한 작품들이지만 그 당시에는 위험한 책처럼 보이는 갖가지 사회과학서적들과 문학서적들을 가지고 사회와 발제자를 정해놓고 토론을 하게 되었다.
처음 접하는 토론문화도 낯설었지만 그보다는 그 책들이 더욱 낯설었고, 우리들을 흥분되게 하였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객지’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장마’ ‘노동의 새벽’ 등 요즘은 교과서에서도 다루는 작품이나 소재겠지만 민주화요구가 대중적으로 구체화되던 87년까지 이런 작품은 보편적으로 다루는 책은 아니었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에 대해 세미나를 할 때였다. 친구 한명이 자신은 이 작품을 갖고 세미나를 하고 싶지 않다고 이것도 시냐고 따지며 ‘도대체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문학다워야 한다’ 고 주장하면서 문학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작품 ‘금시조’를 읽으면서 과거의 대화들이 떠오르는 것은 이 작품의 근본 질문과 연관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스승과 제자로 만난 석담과 고죽사이의 애증과 갈등을 통해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다룬 작품이다. 작품의 주요한 시대적 배경은 일제를 통해 새로운 문물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한 구한말이다. 이때는 근대적인 가치관과 전통적인 가치관이 부딪쳐 혼란을 겪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스승 석담은 영남후예의 학자답게 글씨에 있어서는 힘을 중시하고 기(氣)와 품(品)을 숭상했다. 그러나 고죽은 아름다움을 중히 여기고 정(情)과 의(意)를 드러내고자 힘썼다. 그림에서도 석담 선생은 서화를 심화(心畵)로 여겼고, 고죽은 물화, 즉 자신의 내심보다는 대상에 충실하려는 물화(物畵)를 높이 여겼다. 스승 석담에게 글씨는 도와 마음이 닦인 연후에야 최고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인 반면, 고죽에게 예술은 예술 자체로서 존립할 수 있는 것이지 다른 무엇의 수단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그들 사제 사이에 있었던 유명한 매죽 논쟁이었다. 석담의 대나무와 매화는 원래 잎과 꽃이 무성하고 힘차게 뻗은 것이었으나 한일 합병을 경계로 점차 시들고 메마르고 뒤틀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갈수록 심해 노년의 것은 대 한 줄기에 이파리 세 개, 매화 한 등걸에 꽃 다섯 송이가 넘지 않았다. 고죽에게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어째서 대나무의 잎을 따고 매화의 꽃을 훑어 버리십니까?”
“망국(亡國)의 대나무가 무슨 흥으로 그 잎이 무성하며, 부끄럽게 살아남은 유신(遺臣)의 붓에서 무슨 힘이 남아 매화를 피우겠느냐?”
“정소남(所南=정사초)은 난의 노근(露根)을 드러내어 망송(亡宋)의 한을 그렸고, 조맹부는 훼절(毁節)하여 원(元)에 출사(出仕)했지만, 정소남의 난초만 홀로 향기롭고 조맹부의 송설체(松雪體)가 비천하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서화는 심화(心畵)니라. 물(物)을 빌어 내 마음을 그리는 것인즉 반드시 물의 실상(實相)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글씨 쓰는 일이며 그림 그리는 일이 한낱 선비의 강개(慷慨)를 의탁하는 수단이라면, 그 얼마나 덧없는 일이겠습니까? 또 그렇다면 장부로 태어나 일평생 먹이나 갈고 화선지나 더럽히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모르긴 하되 나라가 그토록 소중한 것일진대는, 그 흔한 창의(倡義)에라도 끼어들어 한 명의 적이라도 치고 죽는 것이 더욱 떳떳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가만히 서실에 앉아 대나무 잎이나 떼어내고 매화나 훑는 것은 나를 속이고 물을 속이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다. 물에 충실하기로는 거리에 나앉은 화공이 훨씬 앞선다. 그러나 그들의 그림이 서푼에 팔려 나중에는 방바닥 뚫어진 것을 메우게 되는 것은 뜻이 얕고 천했기 때문이다. 너는 그림이며 글씨 그 자체에 어떤 귀함을 주려고 하지만, 만일 드높은 정신의 경지가 곁들여 있지 않으면 다만 검은 것은 먹이요, 흰 것은 종이일 뿐이다.”
웅혼한 필체와 유려한 문인화로 명성이 높던 석담은 고죽을 맡아 기르면서도 소학교에 보낼 뿐 처음부터 직접 글씨를 가르치지 않는다. 고죽은 그러한 스승을 애증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우러러본다. 고죽은 스승 몰래 서예를 익히고, 스승은 마지못해 그를 정식으로 문하에 거둔다. 석담이 고죽을 못마땅해 하는 것은 고죽의 재기가 너무 승하여 글씨가 예에 흐르기 때문이었다. 스승 석담은 고죽을 천(賤)한 상, 천골(賤骨)로 평가한다. 그러나 고죽은 하늘이 내린 재주, 천골(天骨)도 역시 갖고 있었고, 스승에 대한 반발과 스승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는 예도(藝道) 논쟁이 있다.
“선생님 서화는 예(藝)입니까, 법(法)입니까, 도(道)입니까?”
“도다.”
“그럼 서예(書藝)라든가 서법(書法)이란 말은 왜 있습니까?”
“예는 도의 향이며, 법은 도의 옷이다. 도가 없으면 예도 법도 없다.”
“예가 지극하면 도에 이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는 도의 향이 아니라 도에 이르는 문(門)이 나겠습니까?”
“장인(匠人)들이 하는 소리다. 무엇이든 항상 도 안에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글씨며 그림을 배우는 일도 먼저 몸과 마음을 닦는 일이겠군요?”
“그렇다. 그래서 왕우군(王右軍)은 비인부전(非人不傳)이란 말을 했다. 너도 이제 그 뜻을 알겠느냐?"
“먼저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면 이제 예닐곱 살 난 학동들에게 붓을 쥐여 자획을 그리게 하는 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만약 글씨에 도가 앞선다면 죽기 전에 붓을 잡을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기예를 닦으면서 도가 아우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평생 기예에 머물러 있으면 예능(藝能)이 되고, 도로 한 발짝 나가게 되면 예술이 되고, 혼연히 합일되면 예도가 된다.”
“그것은 예가 먼저고 도가 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도를 앞세워 예기(藝氣)를 억압하는 것은 수레를 소 앞에다 묶는 격이 아니겠습니까?”
석담선생의 예술은 동양에서의 미적인 성취에 의미를 두는 예술로서 예술자체의 주체성에 의미를 두기보단 (화자의 표현대로 한다면) 수단으로서 기능하는 예술을 뜻한다. 그래서 예술의 정수는 학문적인 것이고 그 성취도 도나 선정에 비유된다. 그러나 고죽의 예술은 스스로의 주체성을 가진 서구적인 경향을 띤 예술이다. 석담 선생의 눈에는 천박하고 잡상스런 예에 불과한 것이지만 고죽은 자신의 예술이 그 본질과는 다른 어떤 것에 얽매이는 것을 못 견뎌 했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고죽은 스승의 깊은 학문에 대해 존경하고, 스승도 제자의 타고난 재능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다. 물론 스승의 전통적인 예술관과 고죽의 예술관은 화해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화합할 수 없는 스승 석담과 제자 고죽은 헤어진다. 고죽은 자유분방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충동에 충실했으며, 그가 가장 강렬한 충동을 느낀 것은 미적인 충동 - 즉 서화였던 것이다. 고죽은 죽음을 앞두고 그의 작품을 다시 거두어들여 분류한 뒤 모두 불태우게 된다. 고죽이 추구해온 예술관, 곧 기교와 정감을 예술의 본질적 요소로 생각했던 고죽이 당면할 수밖에 없었던 허무감의 분출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죽은 그 순간 거대한 금시조의 비상을 보게 된다. 자기에 대해 부정하는 듯 하나 이는 석담에 대한 긍정은 아니다. 금시조는 고죽이 죽는 순간까지 추구했던 진정한 예술의 완성이었다.
고죽이 죽음 직전까지 추구하던 ‘아름다움’, 이 아름다움이란 서론에서 말했던 순수문학 논쟁과 맥을 같이 한다. 아름다움이란 예술 자체적인 수려함을 말하는 것일까?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시대에 따라 이에 대한 개념정의는 달라질 수도 있다. 석담에게 도 - 사회적 기능을 지녀야 하는 예술이 진정한 아름다운 예술이라면 고죽이 추구하는 예술은 주변의 사회적 상황과 사람에 무심한 예술지향적인 예술만을 아름다운 예술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이 작품도 다른 이문열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고죽을 통해 이문열 개인의 관점이 아주 잘 드러내는 반면 석담의 생각에는 강한 비판의 설명을 하고 있다. 예술을 실천적으로 바라보는 것, 예술을 통해 올바름을 표현하려는 것에 대해 시니컬하게 비판하고 있다. 고죽의 입을 통해 ‘자신의 스타일이 서구에선 예술로 비친다’, ‘추사도 위대하지만 따를만한 위인은 아니다’며 자신의 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이문열의 타 작품들에서도 늘 느끼게 되는 시니컬함, 사회⋅민중에 대한 회의, 예술 본연, 순수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 등이 이 작품에서도 강하게 표현되고 있다. 문학이건, 그림이건 간에 모든 예술행위는 인간의 삶의 표현일 뿐이다. 물론 교조적으로 예술이 도덕교과서 같은 주장만을 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예술이 참다운 아름다운 길로 걸어가는 인간을 중심에 두고 그려지는 것은 바람직하다. 일하는 사람, 노력하는 사람, 주위를 돌아보며 함께 가는 사람들이 아름다우므로 인간이 향유하는 예술 또한 이러한 인간의 지향점과 같이 가야 하지는 않을까? 글을 상당히 잘 쓰는 작가임에도 그의 관점에 대해서는 절대 수용하고 싶지 않다.
그럼 작품내의 화두인 ‘서는 도일까?’ 그렇지 않다. 예를 갖지 못한 도 또한 인정받을 수 없고 도를 기본으로 하지 않은 예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 결국 두가지가 모두 추구되어야 한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이 도와 예라는 것이 따로 분리되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합치되어 나타나 감상되듯이 이 두가지가 잘 조화되어서 작품 속에 표현될 때에만 진정한 예술의 완성으로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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