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처
♣ 대상학년 : 중 2학년 전반기
♣ 학습목표 :
- 가난한 무명작가 부부의 생활을 통해 그들의 갈등과 애정을 알 수 있다.
- 정신적 가치 지향과 물질적 가치 지향을 대표하는 인물들과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다.
- 이 작품의 낭만적인 문제해결 방식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 읽기 전 >
1. 이 작품의 시대 상황 - 일제 강점기 상황에서 당대 지식인들의 삶을 이해해 보자
일제의 한국지배정책과 민족해방운동
무단통치기 일제강점기의 제1기로서 1910년의 '합병'에서부터 1919년 3·1운동 이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1905년 이후 보호국체제 5년간을 거친 일본은 한반도를 완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의병세력과 애국계몽운동에 대해 본격적으로 탄압을 했다. 의병전쟁의 경우 1909년 하반기부터 '남한대토벌작전'이라는 것을 감행하여 의병전쟁세력을 '토벌'하는 한편, 언론·민족교육·출판 활동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던 애국계몽운동을 가혹하게 탄압하는 것은 물론 '105인사건'을 날조하여 신민회원을 비롯한 모든 반일세력의 뿌리를 뽑으려 했다.
'합병'을 감행한 후 일본은 조선총독부 를 설치하여 조선을 통치하며, 현역 헌병이 직접 경찰업무를 담당했으며 소학교 교원과 군수 등의 문관들도 칼을 차고 근무하게 하는 헌병경찰제 도를 실시하여 공포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식민통치 초기의 안정을 유지하려 했고, 민간 출판의 일체 금지, 민족계 교육기관의 폐지, 애국계몽운동 간행물의 전면적 압수, 결사·집회의 전면적 금지 등을 통해 식민지배의 기초를 확보해가는 한편, 총독의 자문기관으로 중추원을 두고 '합병'에 공이 있는 친일파 귀족과 관료들을 그 참의(參議)로 임명하여 총독통치에 조선인도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가장했다. 헌병경찰제도를 통해 한반도 전체의 통치권을 장악한 일본은 경제적으로 먼저 조선인자본의 산업자본화를 막고 일본 공업제품의 조선시장 확보를 위해 회사령 (會社令)을 발포했다. 또한 조선을 일본의 항구적인 식량공급지로 만들기 위해 조선총독부를 포함한 일본기관 및 개인의 조선에서의 토지 확보, 토지세수입 증가를 통한 식민지배 재원의 확보 등을 위해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는 한편, 조선에서의 식민지배망 확보를 위해 철도부설·도로건설·항만시설 등 사회간접자본 부문에 일정한 투자를 했다.
사회적으로는 토지조사사업 을 실시하여 식민지 지주제를 강화하고 개항 이전인 조선 후기와 개항기를 통해 일부 성장하고 있던 농촌 중간계급을 전면적으로 몰락시켜 그들을 소작농민으로 재편성함으로써 식민지적 봉건유제가 강력히 잔존하게 했고,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농민층 분해를 촉진하면서도 농촌에서 분출된 인구를 수용할 만한 식민지 공업시설을 갖추지 않음으로써 장차 농촌 및 도시빈민층이 양산될 소지가 마련되고 있었다.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통치 제1기로서의 무단통치기는 일본제국주의가 철저한 탄압을 통해 식민지배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제거하고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식민통치의 기초를 확보해가던 시기였다. 따라서 이에 대한 민족해방운동 쪽의 대응도 자연히 그 대오를 재정비하는 기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선 국내운동에서는 의병전쟁의 잔존세력들이 일부 무장저항을 계속하는 한편, 애국계몽운동계 세력들에 의해 3·1운동이 준비되던 시기였고, 국외운동에서는 시민회계세력 등에 의해 만주지방을 중심으로 독립운동기지가 건설되던 시기였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의병전쟁세력과 같은 무장항쟁론, 애국계몽운동세력과 같은 실력양성론 등 민족운동 방법론에 일정한 차이가 있었으나 무단통치기에도 독립전쟁론적·실력양성론적 방법론과 외교독립론이 등장했고, 이 방법론은 3·1운동을 거쳐 1920년대 민족해방운동에서도 그 맥락이 이어졌다.
民族抹殺政策 일제가 조선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고 조선민족의 저항을 철저히 분쇄·말살하여 최후까지 전쟁협력을 강요하기 위해 취한 정책.
일제는 1937년 중국에 대한 전면적인 침략을 개시하여 전쟁을 확대하면서 조선에 대한 말살정책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중일전쟁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전시에 국가총동원을 비롯한 여러 가지 비상조치가 일본 국내에서 행해졌는데, 식민지인 한국에서는 더욱 심하게 자행되었다. 일제는 이 시기에 이른바 내선일체라는 구호를 내걸고 민족말살정책을 감행했다. 이미 일제는 조선을 합병한 후 점차 조선에서 일본어 교육을 실시해나갔으며, 모든 민족적인 문화활동을 금지하고 자신들의 언어교육을 강요함으로써 민족성을 말살하려고 획책했다. 이러한 탄압이 전시에 더욱 강화되어 1938년 이후 부분적으로나마 시행되던 조선어 교육마저 폐지하고, 일본어의 사용을 강제해 어린 국민학교 학생마저 조선어를 사용하면 벌을 주는 등 언어말살을 꾀했다. 이와 함께 〈동아일보〉·〈조선일보〉 등 한글로 발간되는 신문과 〈문장〉 등의 한글로 된 잡지를 전면 폐간시켰으며, '조선어학회' 사건을 조작해 조선어학회 간부들을 모두 잡아들였다. 이밖에도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정책을 실시해 황국신민의 서사제창, 신사참배 등을 강요했다. 이 정책은 조선인에게 대일본제국의 신민이 될 것과 더 나아가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조선인에게도 황국신민의 의무라는 징병·징용 등을 강제했는데, 그 반면 교육기관의 확충, 정치적 권리의 확대 등은 외면함으로써 내선일체·황국신민화의 허구성을 드러냈다. 이같은 일본의 조선민족에 대한 말살정책은 그들이 도발한 침략전쟁이 수세에 몰리게 되자 극도로 심해져 창씨개명 (創氏改名)까지도 강요했다. 창씨개명은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어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각급 학교에 입학이 허가되지 않았고, 각 행정관청에서 사무취급이 거부되었으며, 더 나아가 식량과 그밖의 다른 물자를 배급받을 수 없었고, 조선식 성명으로 우송된 화물의 수송이 전면 금지되는 등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극심한 탄압을 가했다. 그밖에도 일본은 조선민족을 근본적으로 말살하기 위해 어용학자들을 동원해 일선동조론 (日鮮同祖論)을 주장했다. 이것은 이른바 일본민족과 조선민족의 조상이 같다는 동조동근론(同祖同根論)으로, 조선이 강제로 합병되던 시기에 그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본의 어용사학자들이 조작해낸 논리였다. 일본의 침략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에는 내선일체 및 동조동근론이 더욱 강화되어, 조선인들의 민족성을 없애버리고 일본정신을 가지도록 강요했다. 즉 고대사회에서는 조선민족과 일본민족이 같은 민족이었음을 내세워 친일화된 조선인 지식인들을 통해 이를 인정하게 했으며, 일본의 조상신인 천조대신(天祖大神)의 신주를 조선인의 가정에 걸어놓고 숭배하도록 강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극도의 민족말살정책은 대동아공영권의 꿈을 안고 세계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조선민족의 저항을 초기부터 철저히 차단하고, 끝까지 전쟁협력을 강요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 당대 지식인들은 전통과 근대의 길목에 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학문을 섭렵함으로써 교양과 지식은 높아졌지만 생활적 무능력을 보인다. 근대적 지성은 그런 정신주의와는 성격을 달리하는데도 그들 지식인들에게는 전통적 의식이 남아 있다. 따라서 그들의 위상은 시대 변혁기의 어정쩡한 위치에 있게 된다.
- 교육을 받았으나 그에 걸맞는 직업을 갖기도 힘들었고, 또한 객관적으로 돈을 충분히 벌수 있는 직업은 거의 없었다.
2. 빈처의 의미는 가난한 아내이다.
물질적으로 무능한 지식인 남편을 둔 가난한 아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이야기 해보자.
- 부인이 일을 해야 할 상황
- 가족의 해체
< 인물 분석 >
나(K) 생활에 거의 보탬이 없는 독서와 창작으로 나날을 보내는 무위한 남편, 개인적 출세와 물질주의라고 하는 당대의 일반적 가치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경제적 빈궁과 정신적 고뇌를 겪게 되는 1920년대 지식인의 전형. 무명작가 지망생
아내 생계를 위해 장롱 속의 옷가지까지 전당 잡히며 남편의 성공만을 기다리는 아내. 가난하면서도 남편을 믿고 사랑하며 장래의 기대 속에 살아가는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
T 자신의 재질을 수단껏 발휘하고 적응하는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인물로, 물질적 가치를 지향함
처형 부유하지만 늘 불만족스럽게 살아가는 인물
< 내용 정리 >
T 의 방문과 갈등상황
1. 최근 2년 간 돈 한 푼 생기지 않는 생활고 속에서 이들 부부가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이었나?
- 쓸만한 기구와 의복을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얻어서 살았다.
2. T가 가지고 온 ‘양산’으로 인한 부부의 갈등상황을 책속내용을 중심으로 기술하라.
- 나 (남편) : 양산을 홀린 듯이 들여다보고 있는 아내에 대한 불쾌감을 느끼고 아내의 투정에 사납게 화를 내게 된다.
- 아내 : 양산을 본 직후 ‘나도 가졌으면’생각한다. 이후 저녁에 남편에게 살 도리를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다가 남편에게 된통 화풀이를 당한 아내는 눈물을 흘리게 된다.
3. 그간의 힘든 삶 속에서 나에게 있어 아내란 어떤 존재인가
- 내가 보수 없는 독서와 가치 없는 창작을 하고 있을 동안
- 아내는 자신이 가져온 세간과 의복을 전당포에 잡히고 파는 등 생활을 이어갔고
- 나에게 아내는 위안을 주고 원조를 주는 천사와 같은 존재였다.
장인의 생일잔치를 다녀와서
4. 지문의 어제 일은 어떤 일을 말하며, 그 일로 인해 현재 부부는 어떤 마음인가
어제 일이 있은 후로 우리 사이에 무슨 벽이 생긴 듯하던 것이 그 벽이 점점 엷어져 가는 듯하며 가엾고 사랑스러운 생각이 일어났었다.
- T 의 아내를 위한 선물인 양산을 보고 부러워하는 아내와 이에 불쾌해하는 나 사이의 감정싸움이 있었지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애정이 깊어졌다.
5. 처형이 남편과의 문제로 눈가에 멍이 든 것을 얘기하며 부부는 어떻게 서로를 위안하나
-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도 의좋게 지내는 것이 행복이다.
* 처형의 방문
6. 나의 부부가 생각하는 처형의 생활은
- 처형은 남편을 밉살스러우니 추근추근하니 하면서도
- 물질의 만족을 위안으로 사는 처형의 삶을 가련하게 생각한다.
7. 처형이 사온 갖가지 비싼 비단을 본 아내의 처음의 태도와 처형이 돌아간 후 새신을 풀어보고 느끼는 아내의 태도의 변화를 본 나는 어떤 감정인가
- 아내는 처음에는 별로 부러워하는 기색이 없었으나 새신을 풀러본 후에는 매우 들떠 기뻐한다.
- 현재 아내는 정신적 행복에만 만족하려고 애를 쓰고 있으며, 조심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함. 그러면서도 감사하는 마음
< 주제 확인 >
* 배경 이해
1. 이 소설의 배경설명을 통해 분위기를 알아보자.
봄은 벌써 반이나 자났건마는 이슬을 실은 듯한 밤기운이 방구석으로부터 슬금슬금 기어 나와 사람에게 안기고 비가 오는 까닭인지 밤은 아직 깊지 않건만 인적조차 끊어지고 온 천지가 빈 듯이 고요한데 투닥투닥 떨어지는 빗소리가 한없는 구슬픈 생각을 자아낸다.
- 나의 우울한 기분
- 아침거리가 없어 전당포에 맡길 모본단 저고리를 찾는 아내를 보며 못 본 척 하며 한숨을 쉴 수 밖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
* 나는 어떤 사람인가
2. 다음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는 나의 태도는 무엇인가
취중에도 인력거를 태우지 말고 그 인력거 삵을 나를 주었으면 책 한 권을 사보련만 하는 생각이 있었다.
- 경제적 빈궁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나'의 태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3. 주인공 '나'는 당대의 지식인을 표상한다. 나의 근대적인 면과 전근대적인 면을 구분하여 생각하여 보자
- 근대적 면 : 각국을 돌아다니며 지식을 섭렵했고 새로운 세계의 풍조에 젖은 인물이다. 지식인으로서의 완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고, 청빈한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는 의식의 소유자이다.
- 전근대적 면 : 한편으로 구식여자와 가정을 꾸리고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생리를 알지 못하고, 가장으로서의 구실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아내에게는 군림하려고 드는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4. 나의 자격지심(열등감)은 이 작품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주로 어느 부분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나의 열등의식의 정체는 무엇일까
- 친척들에게 가난한 꼴을 보이기 싫어 내왕하지 않는 모습
- 아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민감하게 신경 쓰는 모습
- 나는 아내로부터 끊임없이 위로를 받고자 하며, 내 문제에 매몰되어 있음으로 해서 주변 상황에 대한 책임의식이 전혀 없다. 열등감은 흔히 우월감으로 역 표출되는데, 지식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강조하는 이면에는 생활인으로서의 열등감이 숨어 있는 것이고, 아내를 속물처럼 비아냥거리며 자신은 청빈의 정신적 높이를 가진 것으로 내세우는 저변에는 열등감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의 모습은 가련한 지식인의 허약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5. 나는 가난과 부에 대해 어떤 기준으로 보고 있는가
가난은 정신적으로 부유한 것이며, 부는 정신적으로 가난한 것이다.
* 나의 아내
6. 이 작품은 장인의 생일날에 모인 처형과 아내의 대조가 잘 부각되고 있다. 이 두인물의 외형과 그것이 상징하는 바를 비교해 보라.
- 처형은 비단옷을 입은 화려한 여인이고, 아내는 전당포에나 찾아갈 수밖에 없는 가난한 풋내기 예술가의 처이다. 처형은 '이글이글 만발한 꽃'이고 아내는 '시들어 말라빠진 낙엽'과 같다. 처형은 쌀 투기로 이루어진 물질적인 부유, 즉 물질적인 면을 상징하고, 아내는 현실적인 보상이 없는 예술, 즉 정신을 상징한다.
7. 처형이 돌아간 후 나와 아내가 나누는 대화내용이다. 다음의 대화를 통해 내가 느끼는 감정은 어떤 걸까
“나도 어서 출세를 하여 비단신 한 켤레쯤은 사주게 되었으면 좋으련만 ⋯⋯⋯.”
“네에?” “얼마 안 되어 그렇게 될 것이야요!”
“정말 그럴 것 같소?”
“그러문요, 그렇고말고요.”
- 가슴 따뜻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은 무명작가인 나를 아내 하나만이 깊이깊이 인정해준다.
- 그 강한 물질에 대한 본능적 요구도 참아 가며 오늘날까지 몹시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나를 도와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를 느낀다.
8. 우리 부부의 근원적 갈등원인은 무엇인가
- 이 소설의 갈등은 부부간의 문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정신적 가치 대 물질적 가치 지향)의 대립에서 오는 것으로, 그것의 갈등은 결국 가정의 행복을 깨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해 부부가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9. 이 작품의 제목 ‘빈처’란 가난한 아내란 뜻이다. 그러나 작가는 가난을 인정하면서 남편을 믿고 따르는 '아내'와 부유하지만 삶의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늘 불만족해하는 '처형'을 대립시킴으로써 가난 이상의 어떤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가
- 가난으로써 사회의 물질지향주의를 타파시키고 정신지향주의적인 삶을 부부가 지향한다.
< 논 술 >
⋆ 이 작품의 낭만적인 문제해결 방식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보며 다음 질문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기술하여 보자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부부간의 갈등이 낭만적으로 해소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따뜻한 애정의 회복을 통해 그 동안의 소원함을 극복하는 모습은 참다운 가정의 모습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지지만, 애정만으로 그들의 가난의 아픔이 치유될 것이라 믿어지지는 않는다. 그가 무슨 일이든 생계를 도모할만한 돈을 획득하지 못하는 한, 앞서의 갈등은 여전히 일어날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낭만적 초월이 아닌 다른 대안은 없는 걸까. 아마도 척박한 식민지의 토양에서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기 어려웠던 걸까
< 관련 활동 >
⋆ ‘이 작품 ’빈처‘의 남편과 아내는 과연 현실적인 인물인가’
다음 글을 읽고서 자신의 의견을 근거 있게 기술하여 보자
이 글에는 K라는 사람이 등장하는 데 이 사람은 문학이라는 학문을 연구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무능력한 남편이다. 이런 남편을 섬기는 것을 운명이라 여기는 그의 아내가 있다. K는 무능력하지만 자존심이 매우 강하다. 이러한 그를 아내는 잘 섬기며 그의 말에 거역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한국의 여인상이라 할 수 있다.
K는 어떤 면에서는 쉽게 넘어가면 될 듯한 문제도 물고 늘어져 사람을 괴롭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의 아내가 빈곤으로 인해 정신적 상태마저 허물어지는 것에 대하여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는 계속 아내에게 시비를 걸고 말꼬리는 물고 늘어진다. 자신만의 열등의식에 싸여 객관적으로 가정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아내 또한 상식을 벗어난 부분이 있다. 힘든 것도 아랑곳 않고 "학문을 하는 예술가의 아내로서의 삶이 힘들다는 것을 당연하다는 이치"로 그냥 오로지 남편만을 보고 살아가고 있다. 과연 참기 힘든 경제적 어려움 앞에서 그렇게까지 고분고분하게 초심을 지킬 수 있는 여인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